- 상상마당 문화기획자 예비과정 3기 동기들에게
- ‘학생운동은 죽었다’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 아득바득 우기다, 아니라고.
07년에 대학에 들어와서 우연히 건물에 붙어있는 ‘대안 경제캠프’의 홍보 포스터를 봤습니다. 3박4일 동안 정치경제학 분야의 강의를 여러 개 듣고 토론하는 자리였는데, ‘대안’이라는 말에 끌려 혼자 무작정 캠프에 참가했고, 일정이 끝난 뒤 곧바로 행사를 주최한 대학연합모임 모 연구회에 가입했습니다. 그 연구회가 단순한 학술모임이 아니라 90년대 운동권 학생들 중에서도 소위 NL(자주민주)계열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모종의 정치적 성격을 띤 단체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지요. 우리학교는 동부지부에 속해있었고, 매주 뭣도 모르고 세미나에 참가하며 ‘빡센’ 책들을 발제해갔습니다. 주로 자본론 해석서들, 신자유주의 및 한국경제 분석서들이었습니다. 단체의 목적 자체가 대학운동권의 부흥(?)을 꿈꾸며 학술로 요즘 대학생들을 유인하려는 것이었기에, 지부별 세미나도, 공개강좌에서도 유명한 지식인들과 대중성을 가미한 책들을 내세웠습니다.
한미FTA나 이랜드-뉴코아 비정규직 문제가 한창 도마 위에 있을 때라 할 수 있는 일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새내기였던 제가 뭐 대단한 일을 했던 건 아니고, 좀 속된 비유를 들자면- 난생 처음 백화점에 따라간 아이가 층별로 늘어선 다양한 물건들을 구경하듯- 진보진영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정치활동과 저항의 양식들을 두루두루 체험했던 것이지요.
물론 이제 와서야 그런 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당시에는 아주 진지했고 또 열성적이었어요. 집회와 시위, 매장점거와 삭발농성, 세미나와 포럼들, 무슨 무슨 투쟁본부와 대책위, 연간 2번의 메이데이와 노동자, 비정규직, 대자보와 성명서 같은 것들. 저는 어딜 가나 열심이어서 얼떨결에 몇몇 대단한 NL계열 선배님들이 귀여워해주는 후배가 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참 이상하게도, 이제부터 조금만 더 열심히 해나가면 그 정의로운 운동판에서 나름 한 두 자리 꿰어 찰지도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제 고개가 갸웃갸웃 기울어지기 시작하더란 말입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라는 새삼스런 물음과, 거기에서 비롯된 회의감이 조금씩 냉정한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게 했던 것이지요. 방법에 대한 고민, 비판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는 지점이었을 겁니다. 왜 나는, 그리고 사람들과 대한민국은 수많은 집회와 수많은 구호들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을까? 열심히 팔뚝질 시늉을 해가며 불러 봐도 결코 입에 붙지 않던 민중가요들, 그것들이 처음 지어지고 불러질 당시와는 분명 많은 것이 많이도 변한 건 아닐까. 또 날이 갈수록 저를 분통 터지게 했던 건 대학의 학생회와 학생회를 여전히 주름잡는 고학도 선배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생운동과 진보진영 헌신한다? 선배들에게서 전수받은 전술로 눈앞의 가시적인 ‘적’과 열심히 싸워 이기면 되었던 시절은 이제 지나갔음에도, 여전히 그 시절을 추억하고 있는 그 선배들은, 사실은 진로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감 때문에 계속 학교에 남아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하기 시작했지요. “이 시대와 사람들을 무언가로부터 지키고 싶다면 그 무언가가 어떻게 변형되어가고, 사람과 시대는 그에 어떻게 부응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해야하는 것 아닐까? 어렵지도 않은 이 사실을 젊고 팔팔한 대학운동권이 깨닫지 못하는 건, 지식과 이념에 대한 섣부른 오해 때문 아닐까.”
이 이야기는 결국 제 스스로 부끄러운 낯을 내보이는 ‘쪽팔림’의 순간입니다. 이 쪽팔림을 회고할 수 있다는 것은 제가 어렴풋이나마 뭔가 깨달았다는 걸까요? 지식은 한 가지 답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힘을 주는 것이라는 것. 이념은 진실이 아닌 생각의 방법이자, 행동의 한 가지 근거일 뿐이라는 것.
- 내가 배운 것은... 비판의 기술, 분노의 논리?
그 이념단체에서 차츰차츰 멀어져 가면서, 새로 만난 보금자리는 대학 내 특별자치기구인 ‘생활자치도서관’이었습니다. 이 공동체는 90년대 후반 기존 운동방식에 회의를 느낀 학생들이 공동체생활과 담론의 재생산을 꿈꾸며 ‘생활도서관운동’을 벌여서 학교마다 하나씩 만든 것입니다. 우리학교 생활도서관은 기존에 활동하던 생도지기들과 새로운 사람들이 화목하게 공존하면서도 서서히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가고 있었고, 개인의 삶과 유리된 거대담론보다는 지금 이 순간 우리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소통의 즐거움’이 컸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처럼 이런저런 모임을 표류하면 생채기 입은 사람들이 주로 모여든 곳이라 서로에게 마지막 남은 보루와도 같은 ‘친정집’이 되었던 건지도 모릅니다. 여성네트워크와 학벌운동, 진보정치 등 이 시대와 싸우는 여러 진영에서 온 사람들이 모인 덕분에 자연스럽게 다양한 비판과 시선이 한 울타리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은 결코 거창한 토론이 아니라 그냥 수다였습니다. 밥 먹다가, 낮술 마시다가, 공강시간에, 틈만 나면 이어지는 유쾌 통쾌한 수다의 시간들이 제게 가르쳐준 건 “내가 춤출 수 없다면 혁명이 아니야”였을까요. 어깨에 힘을 빼고 ‘함께’가기. 비장한 언어를 버리고 생활을 말하기. 비판보다 한 발 앞서 창조를 고민하기.
저도 다양한 부문운동들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고, 여기저기 불쑥불쑥 찾아가 사람들을 만나고 몸으로 겪고 싶었습니다. 환경,여성,이주노동자,인권,대안에너지...학교 밖에서 배워야할 ‘교양과목’들을 주로 비영리조직을 통해 조금씩 접했습니다. 정치의 언어는 세상을 관념적이고 추상적으로 바라보게 하면서 독해자로 하여금 마치 세상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 건 아닌지 반성했습니다.
생활도서관 친구들과 규모는 작지만 재미난 일들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큰 히트를 쳐서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책 <88만원세대>의 공저자 박권일씨를 초대해 강연회를 했는데, 웬만한 출판사들보다도 저희가 먼저 점찍어 발 빠르게 움직였지요. 그 밖에도 축제 때 일회용품을 배제하고 등나무벤치에서 유기농 재료들로 생태찻집을 열고 수익금을 기부했던 일, ‘학벌 없는 사회’ 선생님을 모시고 긴급(?)강연회를 열었던 일, 대안에너지를 공부하러 녹색연합 사람들과 산골짜기 등용마을에 내려갔던 일, 최근에는 참석인원이 적어서 남들이 보면 망한 행사라고 하겠지만 우리들은 즐겁고 행복했던 서평모임과 영화모임들... 막연하게 이런 것도 문화기획 아닐까? 하면서 하나씩 떠올려보네요. 이번 학기에는 교내에서 ‘텃밭 가꾸기’ 판을 벌여보려고 궁리중입니다. 내 손으로 직접 생명을 키우고, 돈 안들이고도 끼니를 때우는 건 어떤 걸까, 궁금해서요.
그러니까, 결국 제가 하고 싶은 말은 3년간 ‘진보’라는 단어를 좌충우돌 껴안고 방황한 뒤에 가까스로 내릴 수 있는 지극히 소심하고 개인적인 결론에 대해서입니다. “비판은 게으르며, 분노는 대안이 아니다.” “나는 지금 행복한가?” 라는 물음과도 얽혀 있습니다.
- 세 가지 키워드: 소통의 가치, 행복한 삶에 대한 고민, 문화예술의 힘을 믿는 것
이제 전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이제 대학 4학년에 올라가니, 나만은 예외일 줄 알았던 ‘취업증후군’의 기운이 이따금씩 냄새를 풍기네요. 대학원에 갈까, 현장에서 문화기획을 배워야하나, 또 훌쩍 떠나볼까. 마음의 변덕이 여느 때 보다도 극심합니다. 젊다는 것은 그 만큼의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반면, 또 그만큼의 불안과 방황을 내재한 것이겠지요....... 감내해야만 할, 젊음의 고통이자 특권이라고 할까요.^^ 다만 공부라는 것이, 책상머리에 붙어 앉아있는 것만을 뜻하지 않고, 또 공부한다는 것이 언뜻 논리와 이성을 요구하는 것 같지만, 실은 나만의 진한 느낌과 감성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볼 때, 먼저 감동하고 사랑할 줄 알아야 무엇이든 끈기 있게 해내고 타인을 감동시킬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감동을 향해 열려있는, 무엇보다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고 싶어요. 또 비판하고 주장하기 이전에, 그 예술에 깃든 희망을 보고 그것을 나누고 싶어 하는 문화기획자가 되고 싶고요.
이것은, 이 기나긴 고백은 다른 모든 분들과 마찬가지로 또 하나의 ‘희망을 말하는 글’입니다. 나의, 여러분들의 빛나는 그 눈들은 시작과 끝의 경계에 서서 변화를 갈망하고 있는 자의 희망이 아닐까.



최근 덧글